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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톱기사(우측)한국영화

동양에서 온 아이들에게 부모가 되어준 그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은 고아들이 신경 쓰여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이들을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에 잠시 맡겼다.

이때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총 1,500명. 이중에는 피난 과정에서 이북으로 온 남한의 아이들도 있었다는 사실.

이에 2009년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는 배우 추상미는 한 대학과 함께 탈북자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봐 <그루터기들>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당시의 상황을 듣기 위해 폴란드의 보육원 직원들을 만나려고 알아봤더니 다들 80대 이상의 노령이라 일단 이들이 생존해 있을 때 우선 영상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해 <그루터기들>의 주인공으로 낙점한 이송이라는 여학생과 함께 폴란드로 향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당시 보육원 원장과 직원들의 증언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

60년도 지난 일이지만, 아이들이 다시 북으로 돌아갈 때를 생각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동양에서 온 아이들을 편견 없이 진짜로 자식처럼 대했음을 느끼게 한다.

또 탈북자인 이송은 당시 아이들이 폴란드에 처음 와서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를 떠올려 본다.

이 과정에서 영화에 담기진 않았지만, 추상미 감독과 두 사람은 속 깊은 대화를 충분히 나눴다고 한다.

극영화 <그루터기들>의 자료조사를 위해 폴란드에 가서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바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다.

지난 15일 기자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추상미 감독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화를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또 두 분의 여직원은 당시 폴란드와 북한의 관계가 우호적이었기에 남한에서 온 감독에게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 부담된다며 거절했다는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당시 폴란드의 고아원에 맡겨졌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폴란드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해 후에 교수나 외교관이 되기도 했고, 어떤 이는 탈북 해 남한에 살다가 1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추상미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를 따뜻하게 대해준 곳이 고향임을 깨달았다며 당시 폴란드 보육원 직원들이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 그들을 보듬어 준 점을 강조했다.

이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선을 보이기도 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이달 3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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