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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기사(우측)한국영화

보통의 설렘이 누군가에겐 생존의 무게일 때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 스틸컷

누군가에게 ‘캐리어’는 설레는 여행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도구다. 그러나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에서 15세 소녀 영선(최명빈 분)이 손에 쥔 낡은 캐리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다는 증거이자,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잔인한 불안의 상징이다.

양부모에게 버려진 영선은 테니스 선수를 꿈꾸는 동갑내기 수아(문승아 분)의 훈련 파트너로 수아네 집에 머물게 된다.

한편, 수아 역시 아버지의 일방적인 기대와 통제 속에서 완벽해야만 한다는 압박, 그리고 영선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결이 다른 불안에 시달린다.

영선은 그 위태로운 울타리 안에 어떻게든 정착하고 싶어 수아 아버지의 욕망에 부응해 코트 위에서 자신을 혹사하고,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고자 완벽하게 유용한 존재를 연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선의는 한시적이었고 계급의 벽은 견고했다. 결국 갈등의 끝에서 영선은 스스로 우아하게 걸어 나오는 대신,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그 집에서 쫓겨나듯 밀려나고 만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대목에서 비극을 말하지 않는다. 똑같이 길 위에 내던져졌음에도, 이전의 영선과 지금의 영선은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쫓겨나는 순간에도 영선의 눈빛은 단단하게 빛난다. 남이 내어주는 임시 안식처는 결코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소녀는, 손때 묻은 캐리어 손잡이를 다시 꽉 틀어쥐고 다음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영화는 두 소녀가 코트 위에서 주고받는 가혹한 랠리를 통해, 아이들이 어른들의 결핍과 이기심 속에서 어떻게 생존을 위해 투쟁해 나가는지 밀도 높게 그려낸다.

최명빈, 문승아 두 신예 배우는 버려지지 않으려는 영선의 간절함과, 사랑과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수아의 예민한 질투를 세밀하게 포착해 낸다.

수아네 가족에게 영선은 한때 필요에 의해 쓰인 도구였고, 수아에게는 불안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 혹독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서는 법을 터득한 영선에게, 이번 퇴장은 더 이상 절망이나 쫓겨남이 아니다.

다시 캐리어를 끌고 발걸음을 옮기는 영선의 행위는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는 그녀만의 진짜 ‘여정’의 시작이다.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내달 2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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