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변해가는 것

영화에서 치매는 오랫동안 ‘비극의 시작’이나 ‘자아의 완벽한 상실’로 묘사되어 왔다.
기억을 잃어가는 인물은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거나 점차 껍데기만 남는 슬픈 존재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세라 프리들런드 감독의 영화 <친숙한 손길>은 이 진부하고 가혹한 프레임을 단숨에 깨뜨린다.
영화는 기억과 언어가 희미해진 뒤에도 과연 인간으로서의 삶이 사라지는 것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80대 여성 루스(캐슬린 찰팬트 분)가 노인 요양 시설에 입소하며 시작된다.
낯선 공간과 통제된 일상 속에서 루스의 기억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닌 가장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은 ‘잃어가는 것’에 슬퍼하기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온전히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우리는 흔히 사라지는 기억의 조각들에 집착하느라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는 한 사람의 온기와 존엄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스크린 속 루스는 여전히 타인과 교감하길 원하고, 자신만의 욕망과 고유한 정체성을 간직한 독립된 주체로 빛난다.
영화 <친숙한 손길>은 인지 기능의 저하를 끝이나 비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피부로 전해지는 온도, 작은 손짓, 눈빛 같은 신체적 감각이 새로운 교감의 언어로 자리 잡으며, 기억이 흐려져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증명한다.
절제된 화면과 세심한 음향 설계를 통해, 영화는 루스의 몸과 마음속에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감각적 세계를 스크린 위에 아름답게 펼쳐낸다.
주인공 루스를 연기한 배우 캐슬린 찰팬트의 연기는 압권이다.
치매를 앓는 인물의 미세한 혼란 속에서도 결코 놓쳐선 안 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잔존하는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표현해 낸다.
영화는 치매 환자 역시 사라져가는 존재가 아닌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삶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치를 새롭게 채워가는 과정임을 일깨운다.
삶의 가장 깊숙한 그늘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영화가 건네는 손길을 가만히 잡아보길 권한다.
영화가 건네는 따뜻함과 깊은 여운이 오랫동안 긴 잔향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 <친숙한 손길>은 오는 23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