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고독의 마스터피스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한 남자가 죽음을 향해 잔을 채운다.
1996년 국내 개봉 당시 관객들에게 지독한 슬픔과 묘한 해방감을 동시에 안겼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개봉 3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개봉한다.
주인공 벤(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알코올 중독으로 해고된 후,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그의 상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다. 영화 속 벤은 아내가 떠나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술을 마셔서 아내가 떠났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고통의 시작점조차 흐릿해질 만큼 술에 잠겨버린 그에게 남은 유일한 의지는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뿐이다.
그런 그가 거리의 여인 세라(엘리자베스 슈 분)를 만난다. 세라 역시 벤만큼이나 깊은 고독을 짊어진 인물이다.
포악한 포주에게 착취 당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녀는 늘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내뱉는다.
이 말은 타인에게 건네는 안심이라기보다,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방어기제에 가깝다.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벤은 술을 끊지 않고, 세라는 자신의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다.
하지만 “술을 끊으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 것”이라는 벤의 절박한 요구를 세라가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다.
세상의 모든 잣대를 치워버린 자리에서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위태롭다. 벤의 손 떨림은 멈추지 않고 세라의 현실은 가혹하지만, 이 지독한 절망 속에서도 영화는 기묘할 만큼 낭만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여기에는 뮤지션 스팅(Sting)의 음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Angel Eyes’, ‘My One and Only Love’ 등 나른하면서도 애절한 재즈 선율은 벤과 세라의 비극을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다.
거친 16mm 필름의 질감과 스팅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는, 비극조차 하나의 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은 단순히 고전 영화를 다시 관람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반추하는 기회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고, 그가 무너져가는 과정조차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가 ‘고독의 마스터피스’로 추앙받는 이유는 바로 이 지독한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30년의 세월을 건너온 이 지독한 사랑의 기록은 오는 7일 재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