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행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집이 무너진 잔해 속에는 먼지 섞인 탄식과 이를 기록하는 고화질 카메라가 있다.
21세기, 인류의 기록 기술은 정점에 달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록은 폭력을 멈추지 못한다.
오는 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노 어더 랜드>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 ‘마사페르 얏타’에서 벌어지는 강제 퇴거와 파괴의 현장을 응시하며 우리 시대 가장 아픈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배경인 마사페르 야타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격 구역 918’로 지정된 곳이다.
수백 년 간 대를 이어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마을은 행정 서류 한 장에 의해 ‘군사 훈련장’으로 전락한다.
이스라엘군의 불도저가 가옥을 무너뜨리면, 집을 잃은 사람들은 조상들이 살던 동굴로 몸을 숨긴다.
성경 속 예언자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이 기이한 ‘동굴 생활’은 2026년 현재 진행형이다.
영화는 법과 공권력이라는 매끈한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이 한 공동체를 어떻게 원시적 고립으로 몰아넣는지 냉철하게 포착한다.
과거 유럽 등지에서 ‘디아스포라’로서 끔찍한 축출과 억압을 경험했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그 억압의 기술을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과거 나치 독일이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기술력을 동원했듯, 오늘날의 이스라엘군은 서명이 기재된 퇴거 명령서를 앞세워 합법의 외피를 두른 폭력을 행사한다.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고통의 역사가 교훈이 아닌, 가장 효율적인 탄압의 매뉴얼로 변모한 현장이다.
특히 영화 속 이스라엘 군인들이 보여주는 행정적 태도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노 어더 랜드>가 기존의 종군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카메라의 역할’이다.
곳곳에 카메라가 즐비한 ‘기록의 대중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태연하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자신들이 촬영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당당하게 집을 부수며, 오히려 자신들도 카메라를 들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촬영하며 기록 경쟁에 나선다.
기록 영상은 기술적 결함 하나 없는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지만, 그 선명함은 역설적으로 폭력의 당당함을 증명할 뿐이다.
“카메라가 있으면 감히 폭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낙관론은 무너진 집의 잔해와 함께 산산이 조각난다.
영화는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셀 아드라와 이스라엘 기자 유발 아브라함의 연대를 비춘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색깔의 벽’이 존재한다.
유발의 이스라엘 차량에 달린 노란색 번호판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상징하지만, 바셀의 초록색 번호판은 서안 지구에 갇힌 채 검문소의 굴욕을 견뎌야 하는 낙인이다.
같은 도로 위에서 번호판 색깔에 따라 누군가는 세계로 나가고, 누군가는 고향에서조차 이방인이 된다. 영화는 이 선명한 대비를 통해 이동권의 차별이 곧 인간 존엄성의 차별임을 고발한다.
두 사람은 친구이지만, 한 명은 점령자로서 민간 법의 보호를 받고 다른 한 명은 피점령자로서 군법의 심판을 받는다.
영화는 이 비대칭적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국제 정치가 외면해온 진실을 관객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인 <노 어더 랜드>는 떠날 곳 없는 이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처절한 생존의 증언이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