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감사를

보통 세로형 영상은 1~2분 이내의 짧은 영상, 이른바 ‘쇼츠’로 많이 제작된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자기 전에 잠깐 보기 좋은 쇼츠(shorts)는 그 잠깐 사이에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까닭에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귀싸대기는 기본이고, 알고 보니 재벌 회장의 잃어버린 자식이었다거나 하는 등 자극적인 이른바 ‘도파민 터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자 이준익 감독이 ‘세로형 시네마’ <아버지의 집밥>을 내놓았다.
원래 이 영화도 쇼츠로 제작한 것이지만, 2분짜리 쇼츠를 모두 이어 붙여 146분짜리 장편영화로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하기로 했다.
이준익 감독은 지난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극적인 숏폼이 대부분인데,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로 숏폼을 안 보는 사람도 유입시키기 위해 숏폼 제작에 나섰다며, “처음엔 극장에서 상영할 계획이 없었는데, 예전보다 가족영화가 많이 줄어서 극장에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투자자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내용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하응(정진영 분)은 평생 ‘밥상머리 폭군’ 노릇을 하며 산다.
맛이 없거나 돌이라도 씹히면 바로 밥상을 엎어 버리기 일쑤지만, 아내(이정은 분)는 아무말도 안하고 그 성질을 다 받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부터 음식을 못 만들게 되자, 그까짓 요리가 뭐 어렵냐며 하응이 대신 음식을 하기 시작한다.
난장판을 만들면서 기껏 만들어 봤자 맛이 없다며 아내가 상을 엎어 버리고, 앞으로 맛 없을 때마다 벌점 1점씩을 줄건데 10점이 되는 순간 이혼이라고 선포하자 당황한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음식을 몰래 배달시켜서 아내에게 주니,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의사 말로는 배달 음식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때문이라고 한다.
배달 시킬 수도 없지, 음식 만드는 건 힘들지, 큰며느리(박지연 분)가 만든 음식은 아예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어쩔 수 없이 하응이 노력하며 계속 집밥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순애가 하응에게 툭툭 아무렇지 않게 오늘은 곰탕이 먹고 싶다, 삼겹살 수육이 먹고 싶다고 내뱉는 바람에 하응은 아주 죽을 맛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게 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인 게 과거 자기가 순애한테 그랬던 걸 지금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이라 뭐라고 불만을 말하기도 그렇다.
여기까지 보면 이 영화는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그렇게 만들 사람이 아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 가면서 벌점 10점이 쌓이자, 순애가 진짜로 이혼하자고 하면서 남편은 물론 자식들까지 당황시킨다.
하응이 이게 뭐냐며 화를 내자, 순애가 왜 그동안 남편이 ‘밥상머리 폭군’으로 살아도 참아왔는지 속내를 털어놓는다.
결국 순애가 큰아들(변요한 분) 집으로 가고, 요리를 못하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배려해 배달 음식을 대접하지만, 순애가 한 입도 안 먹는다.
시아버지도 없는데 굳이 콘셉트 유지하려고 나한테까지 이래야 하나 싶어 며느리가 남편한테 서운한 감정을 쏟아내자, 방에서 부부의 말을 듣던 어린 손녀(박지윤 분)가 나와서 할머니의 마음이 뭔지 대변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오늘 하루 따뜻한 한끼를 만들어 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와 관련해 순애 역을 연기한 이정은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최근에 엄마가 밥하기 지긋지긋하다고 하시는데, 그동안 엄마가 밥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며, (엄마의) 그런 마음을 (연기를 통해) 대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정진영은 기자들한테 “저 원래 저런 사람이에요”라며, 시나리오를 보면서 억지로 뭘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아버지의 집밥>은 오는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