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로 인생을 견디다

영혼이 바뀌는 ‘바디 스왑(Body swap)’은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변주되어 온 익숙한 소재다.
틴에이저 코미디부터 성별이 바뀌며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까지, 영혼 체인지물은 주로 상황이 주는 유쾌한 소동과 해프닝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사카시타 유이치로 감독의 신작 영화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는 이 장르의 익숙한 법칙을 과감히 비튼다.
제12회 소설 야성시대 신인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은 기미지마 가나타의 동명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어떻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질문 대신 “돌아가지 못한 채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열다섯 살의 여름, 우연한 몸이 바뀌어 버린 리쿠와 마나미. 이 비극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며칠, 혹은 몇 달 안에 원래 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무색하게,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두 사람은 10대의 학업과 20대의 진로, 취업,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겪는 사회생활까지 상대방의 이름과 성별, 외모로 완수해 낸다.
영혼 교환이라는 판타지적 설정 아래 ‘자아 정체성의 상실’과 ‘타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인간 본질의 감정을 정밀하게 짚어낸다.
절제된 톤앤매너와 여름날의 맑은 영상미로 매끄럽게 시각화하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거울 속 타인의 얼굴을 보며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는 고독함, 그리고 나의 작은 실수가 상대의 평생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부채감은 영화 내내 인물들의 일상에 짙은 긴장감을 형성한다.
원작이 가진 서사적 단단함은 배우 요시네 쿄코와 타카하시 카이토의 섬세한 호흡을 통해 생동감을 얻는다.
요시네 쿄코는 여성의 외형 속에서 남성의 내면으로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인물의 결을 과장 없는 눈빛과 행동 양식으로 절제 있게 담아낸다.
타카하시 카이토 역시 남성의 신체에 담긴 여성의 내면을 정교하게 연기하며, 캐릭터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적 조율 과정을 매끄럽게 전달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형적인 남녀 간의 설렘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진짜 존재를 증명해 주는 단 한 사람이자, 역설적으로 내가 처한 비극을 상징하는 존재.
이 특수하고도 묵직한 동지적 유대는 눈부신 여름 풍경과 대비되며 관객의 마음에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영화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는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과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한다.
자신의 비극 앞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서로의 인생을 성실히 지켜주기 위해 조용히 헌신한 인물들의 다정함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자극적인 신파보다 깊은 슬픔과 여운을 남긴다.
원작을 읽은 독자에게는 텍스트의 감동이 완성도 높게 구현된 반가움을, 영화로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올여름 잊지 못할 서정적 울림을 선사할 작품이다.
영화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는 오는 9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