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스케일, 단조로운 트릭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30호 살인 사건>은 TV 방영 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스페셜 애니메이션으로, 오는 5일 CGV 단독 개봉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이야기는 정교하게 제작된 가상의 신권 10만 원권 위조지폐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시작한다.
경찰은 이 사안을 국가적 위기 상황인 ’30호 사건(울트라 30)’으로 명명하고 대규모 수사본부를 설치한다.
마침 지폐 인쇄 공장을 견학 중이던 코난과 어린이 탐정단, 란 일행은 공장 내밀한 공간에서 한 남성이 살해된 채 발견되는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피살자의 신발 속에서 30호 위조지폐가 발견되자, 서울 경시청 형사들은 물론 부산의 하인성, 공안의 안기준, FBI의 이상윤까지 가세해 공장 관계자들과 유통 경로를 맹렬히 추적한다.
코난과 하인성은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용의자 사이에서 인쇄 공장의 특수 설비를 활용한 교묘한 밀실 트릭과 범행 동기를 집요하게 파헤쳐 나간다.
이번 특별편은 다양한 캐릭터 라인업과 세심한 한국 현지화(로컬라이징)가 단연 눈길을 끈다.
원작의 일본 신권 1만 엔권 위조 사건을 국내 현실에 맞춰 가상의 ‘신권 10만 원권’ 위조지폐 유통 사건으로 재구성했다.
배경 무대 역시 부산을 비롯한 국내 주요 지역으로 유기적으로 전환되었다.
TV 시리즈 전용으로 소비되던 스페셜 에피소드가 극장판 포맷으로 확장되며, 남도일, 유미란, 유명한, 하인성, 안기준 등 익숙한 베테랑 성우진의 목소리로 스크린에서 재현된 점은 올드 팬들에게 반가운 지점이다.
10만 원권 신권을 둘러싸고 서울 경시청의 골롬보 반장 일행부터 부산의 하인성, 공안의 안기준(아무로 토오루), FBI의 이상윤(아카이 슈이치)까지 총동원되는 대규모 수사극의 구도는 기존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정성스러운 로컬라이징 작업과 화려한 캐릭터 등장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중후반부로 향할수록 신선함보다는 진부함이 먼저 다가온다.
‘사건 발생 → 용의자 도출 → 지폐 공장을 무대로 한 서스펜스 유발 → 마취총을 통한 일괄적 진상 규명’으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서사 틀이 이번 작품에서도 예외 없이 답습된다.
거창한 타이틀과 국가적 위기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실제 트릭의 해법이나 범인의 동기는 수십 년간 고착화된 코난 시리즈 특유의 매너리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해 추리 장르로서의 장르적 쾌감을 떨어뜨린다.
본 작이 지니는 가장 큰 아쉬움은 역시 시리즈의 핵심인 메인 스토리(검은 조직)와의 접점 및 진전의 전면적인 부재에 있다.
안기준과 이상윤 등 중량감 있는 핵심 인물들이 대거 수사망에 포진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듯 보이지만, 정작 사건의 결말은 단발성 옴니버스 수사극의 테두리 안에 머무른다.
관객들이 오랜 기간 고대해 온 ‘검은 조직’에 관한 결정적 복선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는 구조 탓에, 극장을 나설 때 체감되는 서사적 만족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거대한 메인 줄거리가 정체된 채 캐릭터 소모만 반복되다 보니, 장기 시리즈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식상함이 더욱 짙게 다가온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30호 살인 사건>은 극장 환경에 맞춰 선보인 성의 있는 로컬라이징과 ‘올스타전’의 외형을 충실히 갖춘 작품이다.
특히 CGV 단독 개봉을 통해 팬들을 맞이하는 이번 작품은 반복된 전개 패턴과 메인 스토리 진전의 부재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코난 시리즈의 오랜 충성 팬이라면 완성도 높은 더빙과 캐릭터 간의 화학 반응으로 가볍게 소비할 수 있겠다.
신선하고 묵직한 정통 추리나 검은 조직과의 진척된 대립각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