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양한 모습 보여줘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는 단순한 퀴어 영화가 아니다. 보통의 퀴어 영화가 동성애에 초점을 뒀지만,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좀 독특하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가 소개해 준 남자를 만나러 펍에 간 콜린(해리 멜링 분)이 엄마가 소개해 주려던 남자 말고, 잘생긴 바이커(biker) 레이(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분)에게 꽂힌다.
레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기분 좋게 집에 왔는데, 레이는 콜린이 별로였는지 며칠 동안 통 연락이 없다.
그러다가 콜린에게 연락해 오고, 콜린을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워 자기 집에 데려간다. 레이가 자기 옷은 옷걸이에 걸고, 콜린의 옷은 바닥에 던진다.
그러더니 콜린한테 저녁을 준비하라고 한다. 당황스럽지만 순순히 저녁을 만드니, 레이가 자기 옆에 개를 앉히고 콜린은 세워둔 채 혼자 식사한다.
자기 전 양치하는 콜린한테 잘 때 코를 고는지, 자다가 화장실에 가는지 묻더니 모두 아니라고 하니, 그러면 방바닥에서 자라며 자긴 침대 위에서 잔다.
이후로도 이런 일이 계속된다. 처음엔 잘 생기고, 거친 면 때문에 레이에게 끌렸던 콜린이 점점 그의 노예로 길든다.
조금 무례해 보여도 레이랑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아서 그의 요구에 응하다 보니, 나중에 이런 대접 받는 걸 안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해도 자기가 선택한 삶이라며 레이 편을 든다.
레이 발밑에서 자는 것도 좋지만, 1주일 1번 정도는 한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어서 넌지시 말을 꺼내보지만, 레이가 단호히 거절하자 서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이를 떠날 수는 없다. 이미 콜린은 레이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의탁(依託)했기 때문이다.
콜린이 아쉬워하는 걸 안 레이가 시기를 잘 조절해 하루 동안 콜린이 하고 싶은 대로 데이트를 해 준다. 콜린은 그 자체로도 너무 감격스러운데, 그날 밤 레이가 자기 옆에서 자라고 하자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다.
처음부터 콜린의 청을 들어줬더라면 아마도 콜린이 이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을 텐데, 레이는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데 도가 튼 것 같다.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한 동성애를 넘어 지배와 복종(SM)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레이는 단순히 거친 남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배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존재다. 그래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려가 부족한 게 아니라, 상대를 정신적·육체적으로 지배하면서 너와 나는 동등하지 않다는 걸 강조하는 부류다.
그래서 처음 펍에서 콜린을 만났을 때도 그를 으슥한 골목에 데려가 단순히 구강성교만 시키지 않고, 자기 신발을 핥으라고 지시한다.
어쩌면 가장 굴욕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콜린에게 네 위치는 내 발 아래라는 걸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소파에서 밥 먹을 때도 자기 옆에 콜린이 아닌 개를 앉히고, 잘 때도 자기는 침대에서 자면서 콜린은 침대 밑 방바닥에서 자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너와 나는 위치가 다르다는 걸 강조함으로써 콜린을 자기 지배 아래 두려는 의도다.
처음엔 당황하던 콜린도 점점 이런 삶에 물들어 간다. 그래서 레이가 자기 목에 목줄을 채워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늘 차고 다닌다. (물론 자물쇠 열쇠가 레이한테 있어서 콜린 의지로 풀 수도 없다.)
레이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랑 놀 때도 자기는 시중 들기 바쁘지만, 그 자체로 만족한다.
이런 부분에 이해가 없으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단지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는 것, 여자와 여자가 좋아하는 것, 남자와 남자가 좋아하는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성애자이면서, 주종(主從) 관계인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볼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예 보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는 이달 27일 CGV에서 단독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