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타히티. 에메랄드빛 바다와 붉은 노을이 펼쳐진 이곳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완벽한 낙원이다.
일찍이 화가 폴 고갱이 서구 문명의 위선을 피해 찾아들어 강렬한 원색의 ‘원시적 낙원’을 화폭에 담아냈던 바로 그 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베르트 세라 감독의 <퍼시픽션>은 고갱이 꿈꾸었던 환상을 정면으로 비틀며, 이 천국 같은 공간에 드리운 지독하리만치 서늘한 정치적 편집증을 그려낸다.
영화의 제목인 ‘퍼시픽션(Pacifiction)’은 배경인 태평양(Pacific)과 소설 혹은 거짓말을 뜻하는 허구(Fiction)를 결합한 합성어다.
감독이 이처럼 오묘한 조어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명확하다. 서구인들이 오랜 시간 품어온 남태평양 낙원에 대한 환상과 주인공 드 롤레가 펼치는 외교적 언행이 모두가 실체 없는 허구(Fiction)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바로 그 허구의 세계를 지탱하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고등판무관(프랑스 정부를 대변하는 고위 관료) ‘드 롤레'(브누아 마지멜 분)가 있다.
항상 깔끔하게 다려진 흰색 리넨 정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섬을 누비는 그는 자타공인 수완 좋은 정치가다.
원주민 지도자, 카지노의 밀수꾼, 현지 유흥업소 직원까지 누구와도 격의 없이 어울리며 섬의 평화를 조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비밀리에 핵실험을 재개하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바다 저편에 정체불명의 군용 잠수함이 목격되면서 그의 견고하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본국 정부와 군대는 드 롤레를 철저히 소외시킨 채 무언가를 추진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이 한낱 껍데기 같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급격한 불안에 사로잡힌다.
영화 <퍼시픽션>은 대중적인 첩보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2시간 45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이나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타히티의 나른한 자연 풍광과 밤이 되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섬의 공기를 집요하게 포착한다.
특히 영화 속 밤 풍경은 낮의 청량한 자연과 강렬한 이질감을 선사한다.
외지인을 상대로 한 나이트클럽이 성황을 이루고, 과감하게 신체를 노출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열기는 고갱이 찬탄했던 원시적 순수함 이면에 숨겨진 섬의 묘한 타락을 비춘다.
인공적인 네온사인으로 일렁이는 클럽의 공기는 관객을 되레 기묘한 최면 상태로 이끈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파도 서핑 시퀀스가 주는 압도적인 시각적 황홀경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세련된 미장센을 통해 고갱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낙원의 외피와 그 심부에 침투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모 및 향락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한 화면에 완벽하게 공존시킨다.
대본 없이 인이어를 통해 즉석에서 대사를 지시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완성된 브누아 마지멜의 연기는 이러한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거대한 시스템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드 롤레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 정치와 권력의 기만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가 내뱉는 유려한 외교적 말들은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아무런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허구일 뿐이다.
이는 겉포장만 그럴싸하게 굴러가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 그리고 여전히 강대국의 지배와 통제 아래 놓인 포스트 식민지(Post-colony)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다.
결국 영화 속 인물들도, 관객도 핵실험의 실체나 잠수함의 진실을 끝내 명확히 알지 못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개인이 느끼는 근원적인 무력감과 고독이다.
영화 <퍼시픽션>은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지며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영화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공기와 분위기에 몸을 맡긴다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네마틱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내달 1일 개봉.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