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 다시 묻는 인간의 본질

16세기 영국 궁정에서 시작해 20세기 현대의 소음 속으로 걸어 들어온 한 존재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격적인 상상력과 샐리 포터 감독의 탐미적 연출, 그리고 배우 틸다 스윈튼의 신비로운 외형이 만난 영화 <올란도>(1992)다.
개봉 후 30년이 지났고 원작 소설이 나온 지는 어느덧 한 세기에 가깝지만, 2026년 오늘날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어쩌면 씁쓸할 정도로 유효하다. 영화의 설정은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엘리자베스 1세에게 “늙지도 죽지도 말라”는 명을 받은 귀족 청년 올란도는 수 세기를 살아가다 어느 날 아침 여성의 몸으로 깨어난다.
신체적 성별이 바뀌었음에도 그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덤덤하게 읊조린다.
“전과 똑같다.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세상의 시선은 냉혹하게 변한다. 남성일 때 당연하게 누렸던 재산권과 지적 권위는 여성이라는 외피를 입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영화는 40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우리가 본질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사실은 시대가 강요한 가면이자 코르셋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2026년의 스크린에서 다시 마주한 <올란도>는 경이로움보다 서글픈 역설을 자아낸다.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가 일상이 된 고도의 기술 시대에도, 올란도가 마주했던 성별의 장벽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견고한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18세기의 법적 소외는 오늘날 ‘유리 천장’과 ‘혐오의 담론’으로 형태만 바꾼 채 개인의 잠재력을 가두는 보이지 않는 창살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알맹이를 보기 전, 성별이라는 라벨을 먼저 읽는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서사가 비극으로 함몰되지 않는 이유는 올란도의 주체적인 태도에 있다. 그는 가문의 유산과 사회적 지위를 잃는 대가로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누군가의 소유물이나 부속품이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현대의 바람을 가르며 자신의 역사를 직접 써 내려가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영화 <올란도>가 여전히 세련된 명작으로 읽힌다는 사실은 영화사적으로는 축복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우리가 아직 그만큼 나아가지 못했다는 서글픈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꺼낼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꿔본다.
굳이 특정한 ‘주의(Ism)’를 빌려 권리를 주장하거나 투쟁하지 않아도,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는 일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세상 말이다.
올란도가 400년의 긴 여행 끝에 발견한 진리가 “나는 나일 뿐”이었듯, 우리 역시 성별이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서로를 단 한 명의 고유한 존재로 마주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영화 <올란도>는 오는 8일 재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