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지만 빠져든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문제작 <네이키드 런치>가 오는 25일 국내 최초 개봉한다.
이 작품은 1991년 공개된 이후 그로테스크한 비주얼과 파격적인 스토리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34년 만에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관객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네이키드 런치>는 독특한 비주얼과 파격적인 스토리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관객에게는 결코 친절하지 않은 영화다.
이야기는 1953년 미국, 해충 방역사로 일하는 윌리엄 리(피터 웰러 분)의 삶에서 시작된다.
그는 고객의 가정에 방문해 살충제를 뿌리며 해충을 방역하지만, 자신의 살충제가 빈번히 도둑맞아 부족해지고 추가 보급 요청마저 거절당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던 중 아내 조앤(주디 데이비스 분)이 바퀴벌레 살충제를 빼돌려 환각제 대용으로 투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살충제로 환각에 빠져 있던 윌리엄은 조앤의 부정 사실까지 알게 된 후, 아내의 머리 위에 유리잔을 놓고 총기를 겨누는 이른바 ‘윌리엄 텔 놀이’를 하던 중 실수로 아내에게 총을 쏘아 살해하게 된다.
마약 투약 및 아내 살해 혐의로 경찰에 쫓기게 된 그는 ‘인터존’이라는 신비롭고 기괴한 도시로 도망치게 된다.
인터존에서 윌리엄에게 주어진 일은 ‘보고서’를 쓰는 것.
원래 작가가 꿈이었던 그는 스스로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타자기, 기괴한 괴 생명체(머그윔프), 바퀴벌레, 지네 등 벌레와 같은 존재들이 뒤섞인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경험은 그의 ‘보고서’, 즉 소설의 재료가 된다.
영화 <네이키드 런치>는 1950~60년대 비트 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원작의 내용과 영화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원작은 ‘컷 앤 페이스트’ 기법이라는 새로운 창작 방법으로 쓰여 글의 내용을 파악하기 극도로 어렵다.
오히려 영화가 원작에 비해서는 더 ‘친절하다’라고 느껴질 만큼 파편적이고 난해한 원작의 글들을 감독은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했다.
실제로 버로스 작가는 원작을 집필할 때 마약에 취한 상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영화 속에서 살충제를 환각제 대신 투여하고 주인공이 겪는 경험들은 약물 투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각들을 묘사한 부분들이 상당하다.
시카고에서 해충 방역사로 일했던 점, 실제로 마약을 하고 아내와 총을 가지고 놀다 실수로 아내를 쏴 죽이는 등 원작자의 자전적인 실화가 영화에 깊이 반영되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영화는 환각제 투약, 바디 변형(Body Transformation), 징그러운 벌레 등 그로테스크한 부분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말하는 타자기’들과 외계인처럼 생긴 ‘머그윔프’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들은 당혹감과 동시에 묘한 흥미를 유발하며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에, 주인공 윌리엄 리를 연기한 배우는 영화 <로보캅> 시리즈의 주인공 머피 역으로 유명한 피터 웰러로, 차갑고 서늘한 모습부터 불안정한 모습까지 폭넓은 연기로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채운다.
영화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기괴함이 오히려 묘한 매력이 되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특유의 개성이 강한 영화로, 감독을 알지 못해도 그의 영화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네이키드 런치>의 독특한 분위기가 바로 떠오를 정도다.
다만, 바퀴벌레와 지네 등 벌레들이 수시로 등장하므로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관람을 추천하지 않는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