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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톱기사(우측)

허물어지는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숙명

영화 모래그릇 스틸컷

화려한 콘서트홀의 조명 아래, 전 국민의 찬사를 받는 작곡가이자 천재 피아니스트 와가 에이료가 신곡 <숙명>을 지휘하며 격정적인 피아노 선율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찬란한 선율 이면에는 피 묻은 의복을 숨기고 과거를 지워야 했던 살인자의 냉혹한 진실과, 한센병 환자인 아버지를 부정하고 신분을 세탁해야만 했던 한 아이의 비극이 공존한다.

1974년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모래그릇>은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수작이다.

개봉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이 전설로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범인 추적극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도쿄역 차량기지 선로에서 신원 미상의 노인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유일한 단서는 ‘가메다’라는 의문의 단어뿐이다. 베테랑 이마니시 형사(탄바 테츠로 분)는 이 희미한 실마리를 붙잡고 일본 전역을 누비며 사건의 본질에 접근한다.

수사극으로서의 <모래그릇>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집요하다. 첨단 수사 기법이 전무하던 시절, 형사는 기차 시간표를 대조하고 전국의 방언을 연구하며 범인의 행적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범인의 정체보다 그가 왜 그토록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 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주인공 와가 에이료가 필사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진실의 핵심에는 한센병 환자인 아버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낙인이 곧 사형선고와 다름없던 시절, 병든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 과거는 지워내야 할 오점이었고 그의 성공 앞에 아버지의 존재는 드러나면 안 되는 존재다.

비극은 여기서 싹트는데, 아버지를 향한 지독한 그리움과 그를 부정해야만 살 수 있는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가 와가의 삶을 송두리째 옥죄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를 숨겨야만 했던 그의 선택은 성공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입었음에도 속절없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모래그릇’과 같은 숙명적 비극을 예견한다.

이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풍광이다.

2년에 걸쳐 포착된 일본의 사계, 특히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설원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찬란한 배경 위를 걷는 부자의 행색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마을에서 쫓겨나 매질과 멸시를 견디며 구걸로 연명하는 병든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되어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자연은 평온하되 인간의 고통은 잔혹하다는 이 시각적 대비는, 주인공 와가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과거를 숨기려고 했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40분을 장식하는 교차 편집이다. 형사의 이성적인 수사 보고와 주인공 와가(가토 고 분)의 화려한 공연, 그리고 참혹했던 과거의 유랑 시절이 협주곡 ‘숙명’의 선율 위에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합치된다.

구걸하던 소년 히데오가 턱시도를 입은 거장 와가로 치환되는 과정은 처연한 슬픔을 안긴다.

건반을 두드리는 그의 손짓이 아버지를 유기한 죄책감과 숨겨왔던 그리움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비극의 울림을 선사한다.

“그는 오직 음악 속에서만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는 대목은 이 영화가 지닌 비극적 정체성을 관통하는 핵심적 은유다.

음악이 절정에 달할 때, 형사는 수용 시설의 노부 모토우라에게 아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혈육의 재회를 목전에 둔 노인의 눈동자는 격렬하게 흔들리지만, 그는 끝내 오열을 억누르며 나는 이런 사람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아버지임을 인정하는 순간 아들의 세계가 무너질 것을 알기에, 아버지는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아들을 지키려 한다.

살인을 해서라도 아버지를 지워야 했던 아들과, 거짓말로 아들을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의 엇갈린 ‘부정’은 관객의 심장을 파고든다.

제목 모래그릇은 파도가 치면 단숨에 허물어지는 모래성과 같은 인간의 성공과 허망한 욕망을 상징한다.

영화는 주인공을 단순한 악인으로 단죄하기보다, 한 인간을 살인자로 몰아넣은 사회적 낙인과 편견의 잔인함을 날카롭게 고발하며, 비극적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발버둥에 대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모래그릇>은 내달 2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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