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계에 또 하나의 강렬하고 묵직한 족적이 남았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고(故) 허범욱 감독의 장편 유작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잔혹한 우화의 형식을 빌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폭력성과 인간성의 실추를 정면으로 다룬 하드보일드 스릴러다.
연출을 맡은 허범욱 감독은 첫 장편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로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 중 하나인 홀랜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의 유작이 된 이번 작품 역시 정식 개봉 전부터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제20회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미리내로 관객상,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NH농협 배급지원상(특별언급)을 수상하고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독창적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지옥의 바닥에서 살아 돌아온 두 존재의 엇갈린 선택을 대비시키며 시작한다.
구제역 살처분이라는 비극의 구덩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돼지 ‘H’는 오직 살기 위해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반면, 가해자들의 무자비한 집단 폭력과 이를 방관하는 사회의 냉담함 속에서 영혼이 부서진 청년 ‘정석’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차라리 ‘짐승’의 길을 선택한다.
영화 속 기괴한 신체 변형은 극단적인 열망과 상처가 외형으로 드러난 섬뜩한 연출적 장치다.
H는 처절한 집착 끝에 직립 보행하는 인간의 몸을 얻지만, 끝내 돼지의 얼굴을 벗지 못한 ‘경계인’으로 남아 사회에서 외면 받는다.
반대로 정석은 스스로 야성에 몸을 던지며 짐승처럼 변해간다.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었던 두 존재가 마주한 현실은, 장소만 바뀐 또 다른 지옥에 불과하다.
독창적인 비주얼과 모션 캡처 기법, 그리고 남도형·민승우 등 베테랑 성우의 열연은 이 처절한 세계관을 한층 생동감 있게 완성해냈다.
1시간 45분의 상영 시간 동안 작품은 관객에게 결코 편안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혈이 낭자한 바디 호러 연출과 적나라한 폭력성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파격적인 시각적 묘사 속에서 영화는 “참아보지 그랬어요”라는 대사처럼 타인의 고통을 개인이 참아내야 할 몫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무감각과 방관의 폭력을 날카롭게 찌른다.
나아가 살기 위해 인간의 사고방식을 학습한 H가 도리어 집단 이기주의와 배타성을 닮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폭력이 어떻게 내면화되고 순환하는지 서늘하게 고발한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의 세상에서 ‘진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오는 21일 극장가를 찾는 영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화면이 꺼진 후에도 관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묵직하고 서글픈 질문을 남긴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