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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사태’를 아시나요?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 스틿컷

지금은 강원랜드가 들어선 옛 동원탄좌 사택 부지. 한때 동양 최대의 민영 탄광이었던 동원탄좌 덕분에 서울로 매일 석탄을 나르느라 사북역은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매년 200명 정도의 광부가 작업 도중 사망했다.

정부에선 광부들을 ‘산업 전사’라고 추켜 세웠지만, 산 중턱에 있는 동원탄좌 사택 단지에 목욕탕이라곤 하나 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여자 목욕탕은 없었다.

생필품 사러 시내에 나가기도 불편한데, 회사에서 운영하는 신협에서는 생필품은 물론 광부들이 캔 석탄으로 만든 연탄까지도 시내보다 비싸게 팔았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어용(御用)노조였던 동원탄좌 노조는 노조원들의 애로사항을 모른 척했다. 심지어 이재기 노조지부장은 불법선거로 자기 임기를 늘려나갔다.

이에 노조원들의 불만이 고조됐고, 형사들이 회사에 상주하며 노조원들을 감시했다.

1980년 4월 21일, 노조원들이 노조 사무실로 몰려가니 지부장은 없고, 경찰만 가득했다.

그때 낯선 형사 한 명이 노조원들의 사진을 찍었고, 흥분한 노조원들을 피해 도망치던 경찰이 차로 노조원을 치고 달아났다.

분노한 노조원들이 파출소로 몰려갔고, 광부들의 분노가 고조됐다.

다음 날, 경찰이 ‘사북사태’ 진압을 위해 출동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안경다리’로 집결했다.

동원탄좌로 진입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광부들이 다리 위에서 돌을 던졌다.

(쉽게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방패도 없이 출동한 경찰은 (격렬한 저항애)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경찰도, 광부도 피해를 입었다.

광부들이 사북을 봉쇄하고, 노조지부장 아내를 게시판 기둥에 묶는 등 극한 상황으로 치닫자, 다음 날, 공수부대가 근처에 대기 중이라는 말이 돌았다.

광부들은 만약 군인들이 투입되면 회사 내 예비군 연대 화약고에서 무기를 꺼내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

공수 여단장이 3분 만에 끝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강원도지사가 도민이 다쳐서는 안 된다며 끝까지 막았다.

결국 평화적으로 협상이 마무리 됐고, 사북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신문에도 합의 사항이 보도된 까닭에 광부들은 합의가 됐다고 믿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5월 초, 빨갱이를 잡는다며 경찰과 군인이 사북에 투입됐다. 심지어 새벽 2시에 사택 창문을 깨고 들어와 광부들을 잡아갔다.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끌려갔다. 그렇게 끌려간 이들은 걷지도 못하게 다친 채로 풀려났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군사재판에 넘겨져 총 28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조지부장 부인을 도와주려고 했는데도, 사진에 찍혔다고, 협상 결과를 전달한 것뿐인데 이 장면이 사진에 찍혔다는 이유로 짓지도 않은 죄명을 뒤집어 쓴 채 고문당했다.

경찰은 “일개 광부가 이럴 수는 없다”며 “뒤에서 조정한 놈(간첩)을 대라”며 고문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없으니, 전라도 출신 광부한테는 김대중 지시로 위장취업한 빨갱이가 맞지 않냐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2008년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국가가 사과하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우리 국가는 아직까지 당시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무기고 파손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강윤호 씨가 40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판결받았지만, 대한민국은 이들을 외면 중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은 이른바 ‘사북항쟁’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노조위원장과 노조원 사이의 불신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으나, 사실 이 사건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 있다. 그리고 회사의 횡포는 정부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정부와 회사가 야기한 문제 때문에 같은 노동자끼리 편을 갈라 오랜 세월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당시 노조원들은 이재기 노조지부장이 1,700만 원이라는 거액을 횡령했다고 몰아세웠지만, 당시 재판을 통해 그런 일이 없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재기 지부장 역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균형을 맞춰 양측의 입장을 담으려고 애썼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들도 많이 출연하는데, 이 영화가 사료(史料)가 되어 당시 사건의 진상을 대중이 제대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은 이달 29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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