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아내에게 “미안하다”?
내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된다는 것은 신비한 경험이지만, 한편으로 두려운 경험일 수도 있다.
더욱이 임신이 처음이라면 더욱 더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과연 10개월 동안 내 몸 안에 잘 자랄까? 행여 내가 실수해서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내 몸 상태로 아이를 건강하게 낳을 수 있을까? 등등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
중도장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지 17년 된 은진(김시은 분)은 (남들에게는) 즐거운 장소에서도 (접근성 때문에) 늘 혼자였지만, 이젠 그녀 옆에 남편 호선(설정환 분)이 함께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의 편이 되어 주며 지내던 어느 날, 은진이 임신 8주라는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선택’이 가능하다며, 계획 없이 임신한 것 같으니 (남편과) 상의해 보라고 한다.
모든 산모한테 이렇게 말하지 않을 텐데 싶어 은진이 의사에게 대든다.
한편, 시간강사인 호선은 같은 전공의 전임교수가 올 예정이라는 말에 강의를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
서로의 상황을 모른 채, 은진이 혹시 자기가 임신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 우리 둘이 잘 살기로 했는데 뭐하러 그런 고민을 하냐는 답이 돌아온다.
남편한테 말도 못하고 다음 날 은진은 재활의학과 주치의를 찾아가 자기가 임신할 수 있냐고 묻는다.
노교수(老敎授)는 할 수야 있다면서도, 자기 환자 중에 임신한 사람이 없어서 정확히 말 못하겠다고 한다. 결국 은진은 주치의에게도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고민 끝에 은진이 퇴근한 남편한테 임신 사실을 밝히자,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과연 은진의 몸 상태로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호선이 은진의 주치의를 찾아가 뼈가 약한 은진이 출산할 수 있겠는지 묻는다.
그 사이, 집에 혼자 있던 은진이 요로 감염으로 열이 난다. 귀가한 호선이 은진을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간다.
은진은 행여 뱃속 아이에게 해가 될까 걱정한다.
다행히 같은 병실에 입원한 25주차 임산부(오지후 분)가 자기 경험을 들려주자. 한시름 놓는다.
뒤늦게 병원에 온 친정엄마가 아마 호선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퇴원하면 바로 낙태수술을 하자고 한다.
퇴원해서 집에 가던 중 우연히 호선이 지난번 길에서 본 진우라는 아이가 대로변에 나온 걸 발견하고 파출소에 데려간다.
무조건 울기만 하는 진우를 은진이 달래주고, 몇 시간 만에 진우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온다.
이를 지켜보면서 호선과 은진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게 되고, 결국 둘은 아이를 낳기로 한다.
산부인과를 찾은 은진에게 양수검사를 해 보라고 권하자, 만약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보통은 낙태를 권한다고 하자, 고민하던 은진은 양수검사를 안 받기로 한다.
한편, 수필집 출간을 앞둔 은진이 출판사 요청으로 엄마를 인터뷰 해 이를 정리하다가 그만 ‘실례’를 하고 만다.
산부인과 의사 말로는 복압이 상승해서 그렇다며, 아이를 낳고 나면 ‘보통은’ 괜찮아지는데 은진이는 어떨지 확실치 않다고 말한다.
남들한테는 별것 아닌 실금(失禁)이지만, 은진은 자기가 보통의 산모가 아니라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어느덧 임신 29주차가 된 은진은 아이가 복수(腹水)가 찼다는 말에 결국 입원해서 양수검사를 받기로 한다.
이게 다 자기가 예전에 양수검사를 거부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싶어 후회되는데, 정확한 검사를 위해 아이의 복수를 빼서 추가 검사해 보자는 말에 은진은 이게 다 자기 장애 탓인 것 같아 자책한다.
이에 의사가 은진에게 이건 은진의 탓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벌어진) 교통사고 같은 일이라고 위로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18년간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17년째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처음 은진의 임신 소식을 들은 남편은 성치도 않은 몸으로 임신이라는 고통을 안겨준 게 미안하다는 의미로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친정엄마는 자기 몸 하나 건사 못하는 처지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르겠냐는 의미로 “낙태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은진의 임신을 진단한 산부인과 의사도 어차피 아이를 낳을 처지가 아닌 것 같다는 의미로 “(남편과)상의해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애인’에 도드라지게 초점을 두기보다는 처음 임신한 ‘여성’이 겪는 불안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성지혜 감독은 지난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장차연의 활동을 지지해 왔다며, 2021년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이 재난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조사하다가 장애여성의 어려움을 시나리오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은진이 아이를 낳은 걸 보여주면, 관객이 “쟤네가 어떻게 아이를 키우지?”라며 답답한 마음을 가질까 싶어 은진이 아이를 낳으러 가는 걸로 결말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임신한 은진이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르면서 겪는 몸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이건 장애여성이어서 겪는 일이 아닌, 임산부라면 다 겪는 그리고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은진에게 처음에 넌지시 낙태를 권하던 산부인과 의사도, 나중에 은진이 태아에게 복수가 찼다는 걸 알고 은진더러 절대 자책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이달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