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도 괜찮아

세상은 늘 우리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명확한 목표와 꿈을 가진 이들이 박수받는 시대 속에서, 그 질문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자연스레 ‘쓸모없는 존재’로 분류되기도 한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굿 포 낫씽>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하얀 눈밭을 서성이던 우리들의 초상을 따뜻하게 비춘다.
영화의 줄거리는 담백하다. 삿포로의 추운 겨울, 고교 졸업을 앞둔 단짝 이와미, 타카야, 히데키는 특별한 계획이 없는, 말 그대로 ‘쓸모없는(Good for nothing)’ 청춘들이다.
이들은 선배가 근무하는 보안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첫발을 내디딘다.
어색한 정장을 입고 경비 업무를 배우는 생경한 경험 속에서, 세 친구는 함께 웃고 떠들며 어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의 차가운 공기는 견고했던 이들의 관계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영화가 포착하는 가장 서늘하고도 정직한 현실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막막함이다.
주인공들에게는 당장 거창한 좌절도, 화려한 성공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거대한 공백을 마주할 뿐이다.
사회는 이들에게 ‘어른’이라는 역할을 능숙하게 연기하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어떤 무대에 서야 할지조차 알지 못한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같은 출발선에 섰던 세 친구는 모두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수식어를 공유하는 동질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사회라는 틀 안에서 누군가는 책임감을 느끼며 빠르게 적응해 나가지만, 누군가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겉돌기 시작한다.
이들은 이 ‘모호한 시기’를 통과하며 각자의 길로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함께 탄 차 안에서 공유하던 리듬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누군가 변해서가 아니다.
각자가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와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압박의 보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신파적으로 그리는 대신, 16mm 필름의 거친 입자 속에 묵묵히 담아낸다.
관객은 화면을 통해 그 시절 우리가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을 다시금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다.
미야케 쇼 감독은 흑백의 미장센을 통해 조용히 읊조린다.
꿈이 없어도,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라 방황해도 그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색채를 덜어낸 화면 속에서 세 친구의 서툰 몸짓은 역설적으로 더 환하게 빛난다.
영화 <굿 포 낫씽>은 ‘쓸모없어도 괜찮다’라고 우리를 다독인다.
세상이 정한 궤도에서 잠시 이탈해 있을지라도, 그 막막했던 겨울의 발자국들이 모여 결국 나만의 길을 만든다는 사실을 영화는 담담하게 비춘다.
이제 막 사회로 발을 내딛는 청춘들뿐만 아니라, 이미 ‘무엇이 되어버린’ 어른들에게도 이 영화는 잊고 있었던 가장 순수한 방황의 기억을 되찾아줄 것이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