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인간, 복수의 끝은?

J-호러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뱀의 길>이 마침내 국내 개봉한다.
최근 구로사와 감독이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직접 연출한 동명의 리메이크작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데 이어, 그 뿌리가 되는 오리지널 원작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어떠한 설명도 생략한다. 어린 딸을 처참하게 잃은 아버지 미야시타(카가와 테루유키 분)와 그를 돕는 미스터리한 수학 학원 강사 니지마(아이카와 쇼 분).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야쿠자 조직원을 납치해 감금한 허름한 창고 한복판으로 관객을 다짜고짜 밀어 넣는다.
영화는 납치, 감금, 처단의 반복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4K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90년대 특유의 차갑고 거친 비주얼과 묘한 긴장감은 장르 영화로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재미이자 서스펜스의 중심에는 조력자를 자처하는 인물, 니지마가 있다.
평범하고 단정한 수학 학원 강사인 그는 피비린내 나는 감금 창고 안에서도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듯 무표정하고 덤덤하게 상황을 지휘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남의 복수를 이토록 완벽하고 잔혹하게 돕는가?”라는 의문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거대한 미스터리다.
니지마는 분노에 휩싸여 폭주하는 미야시타와 철저하게 대조를 이룬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냉철한 논리와 이성으로 복수의 단계를 밟아나가는 그의 포커페이스는 보는 이를 의문에 빠지게 한다.
맹목적인 광기로 가득 찬 미야시타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철저하게 통제하는 니지마의 모습은 차갑다.
그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이 거대한 파멸극을 정교하게 설계한 인물임을 암시하며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야기가 전개되고 인물들이 감추고 있던 과거의 연결고리가 하나씩 베일을 벗으면서,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인간의 깊은 심리 이면을 파고든다.
딸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아버지는 사건의 배후를 추적할수록 비극의 원인을 제공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나는 몰랐다”라며 방조하고 묵인했던 대가가 결국 소중한 이를 앗아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비겁한 기만 뒤로 숨으려 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로 인한 파멸을 서늘하게 포착해 낸다.
‘악당의 생리는 악당이 가장 잘 안다(蛇의 道는 蛇, 뱀의 길은 뱀이 안다)’는 일본의 오래된 속담에서 따온 제목처럼, 영화는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추악한 뱀의 길로 걸어 들어간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뱀의 길>의 진짜 묘미는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강렬한 반전에 있다.
복수의 종착지에 다다랐다고 믿은 순간, 영화는 인물들이 숨겨왔던 진짜 얼굴과 감춰진 인과관계를 단숨에 뒤틀어버리며 관객의 뒤통수를 서늘하게 내리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이 충격적인 반전은, 관객이 영화 내내 의지했던 도덕적 좌표를 순식간에 흔들어 놓는다.
과연 어디까지를 정당한 복수라 부를 수 있을까? 영화는 인물들이 물고 물리는 복수의 굴레 속에서 영혼이 깎여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피비린내 나는 종착지에서 마주하는 것은 오직 ‘인간 파멸’뿐이라는 비극적인 서스펜스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통쾌한 카타르시스 대신 가슴 먹먹한 질문과 기묘한 여운을 던지는 결말부에 이르면, 감독이 왜 이토록 정교하게 니지마라는 미스터리한 인물과 복선의 장치들을 배치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이번 개봉은 감독의 날카로운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를 가장 완벽한 화질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극장에서 짜릿한 서스펜스와 예측하기 힘든 반전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대중에게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영화 <뱀의 길>은 오는 22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