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실패했지만, 값진 걸 얻은 프로젝트

여기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을 만나고 싶어서 안달인 여성감독이 한 명 있다.
IMF 때문에 고생하던 시기, 중학생 박효선 양이 우연히 메릴 스트립의 영화를 보고 그녀에게 빠진다.
메릴 스트립의 스크린 밖 모습에도 감동을 받아 나중에 꼭 메릴 스트립의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 일어나자, 박효선 감독은 ‘찍는 페미’라는 X(구 트위터) 계정을 통해 주위 사람들이 겪은 일을 알렸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박 감독의 인터뷰를 방송하는 등 그의 활동에 주목했다.
그는 ‘메릴 스트립 정보봇 한국본부’라는 X 계정을 만들어, 메릴 스트립의 여러 발언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메릴 스트립이 시상식에서 한 말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하자, 박 감독은 팬이 아닌 페미니스트 대 페미니스트로 만나고 싶어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메릴 스트립에게 연락을 시도해 보지만, 쉽지 않다,
인터넷에선 메릴 스트립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나는 왜 연락조차 쉽지 않은 건지 모르겠어서 힘들다.
3번의 통화 끝에 메릴 스트립의 에이전시 담당자 제니의 연락처를 알아내지만, 제니와의 통화 자체가 쉽지 않다.
수차례 국제전화를 걸어 겨우 통화가 됐는데, 이메일로 다시 보내 달라고 한다.
이메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보내니 아주 짧게 메릴 스트립을 만나는 게 힘들 것 같다는 답이 온다.
이에 박 감독 영상 편지를 X 계정이 올린다. 그러자 국내 언론에서 박 감독의 이런 시도를 주목한다.
국내 유명 영화잡지에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중견배우 임예진과 배우 겸 영화감독인 문소리도 관심을 보인다.
더 이상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여성들이 부당한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박효선 감독의 마음을 응원하는 이들이 6천만 원이 넘는 돈을 후원한다.
이에 박 감독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메릴 스트립을 만나러 미국에 가지만, 대스타인 그녀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다큐멘터리 영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페미니스트인 배우 메릴 스트립을 존경해, 한국 영화계의 상황을 알리고, 응원을 받기 위해 중학생 시절부터 메릴 스트립을 좋아해 온 한 감독이 이른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기획해 메릴 스트립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10년 동안 메릴 스트립을 만나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았고, 그 사이 박 감독이 메릴 스트립을 만나려는 ‘의도’ 덕분에 동료 창작자들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마지막에 짠하면서 메릴 스트립을 만나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아도 그 시도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이미 ‘찍는 페미’ 계정을 통해 메릴 스트립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국내 여성 영화인이 연대하는 성과가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성과라 할 수 있다.
박 감독이 메릴 스트립을 만나러 가기 위해 애쓴다는 걸 알고 대신 영어로 에이전시와 통화해 주거나, 비행기 표를 알아봐 주던 주위 사람들이 아예 이 작품의 프로듀서로까지 참여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비록 메릴 스트립은 못 만났지만, 그 과정 자체로 성과를 얻은 다큐멘터리 영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오는 28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