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식구에서 가족이 되어간다
과거 견미리, 박정수, 여운계 등이 출연한 <LA 아리랑>이라는 SBS 시트콤이 있었다. 미국에 정착한 재미교포 가족의 삶을 코믹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무려 5년 동안 방영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개봉을 앞둔 영화 <라리랑> 역시 재미교포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LA 아리랑’에서 LA를 ‘라’로 치환하고, ‘아’자를 빼 제목을 지었다. 결국 이 작품의 제목 역시 <LA 아리랑>과 같다.
음력설을 맞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딸 윤희(이주우 분) 부부가 LA에 있는 친정에 와서 겪는 일을 코믹하게 그렸다.
명절 준비로 신경이 곤두선 준배(김종구 분)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얼마 전 신청한 어머니의 요양원 입소 순서가 돼서 오늘 픽업하러 오겠다는 내용인데, 드문드문 단어 몇 개로 대강 알아들은 준배가 오늘은 바빠서 안 된다고 하지만, 금요일이 원래 바쁘다며 이따가 5시까지 오겠다고 한다.
일단 전화를 끊었는데, 치매에 걸린 노모(변중희 분)는 계속 귤을 먹고, 애들은 왜 아직도 안 오나 싶어 답답한데, 아내(정애화 분)가 차린 차례상은 부실해서 속이 터진다.
같이 사는 아들(윤원준 분) 놈은 방에서 여자 친구랑 통화하면서 웃통을 벗고 있다. 이놈은 방구석에서 뭐하고 있나 싶어 속이 터진다.
그때 기다리던 딸 부부가 와서 그나마 분위기가 풀린다. 딸이라고 엄마, 아빠한테 애교를 부리니 좋아해서 다행이다.
윤희 남편이 윤희한테 집 앞에 걸어둔 한복을 차 트렁크에 넣었냐고 묻는다. 윤희가 잊어버렸다며, 괜찮다고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가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명절인데 한복을 두고 온 게 말이 되냐며 버럭 화낸다.
윤희가 미국에 살면서 무슨 한국 명절까지 챙기냐고 했다가 아빠 화만 돋운다.
장시간 운전해서 왔으니 봐 달라는 윤희에게 아빠가 예전에 자기는 명절에 12시간씩 운전하기도 했다며 화낸다.
이런 상황에서 윤희의 오빠 윤호가 엄마한테 말도 없이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부른다.
아빠가 윤희 부부한테 식구와 가족의 차이를 아느냐며, 이제 윤희는 이씨 집안 사람이고, 이 서방이 호주라며 윤희는 ‘떠난 사람’이라며 한 차례 딸과 전쟁을 치르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말없이 혼자 집을 나갔다가 겨우 다시 찾자마자 말이다.
이름이 ‘현아’라고 해서 한국인인 줄 알았던 준배는 데이지의 등장에 당황하고, 할머니는 (죽은 막내 딸) 춘자가 왔다며 좋아한다.
여기에 윤호 엄마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아들이 갑작스레 애인을 공개하자 툴툴거린다.
데이지가 거래처 사장 딸인 걸 뒤늦게 안 준배는 데이지를 따뜻하게 대한다. 조금 전 사위(손문영 분)를 대할 때와 180도 다른 모습에 부인도, 딸도 못 마땅해 한다.
분위기에 힘입어 윤호가 데이지랑 결혼하겠다고 하니, 아빠가 노발대발하고, 데이지 역시 윤호를 사랑하지만, 결혼할 상대로는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그때 할머니를 데리러 요양원에서 오자, 지금까지 싸우던 가족들이 합심해 저지한다.
이 영화의 재미는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데 있다. 미국에선 명절도 공휴일도 아닌데, 미국에 살면서 굳이 한국의 명절까지 챙겨야 하냐는 딸과, 어디에 살든지 한국사람이니 당연히 한국의 명절을 챙겨야 한다는 아빠의 완강한 태도는 비단 극 중 가족에게만 일어나는 갈등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려고 하는 자식 입장에선 설날보다 부활절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평소 입어본 적도 없는 한복을 굳이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한국 명절이니 입으라는 장인의 말이 부모님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사위에겐 이해되지 않는다.
<LA 아리랑>은 시트콤이라는 장르 특성상 코믹하게 재미교포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다뤘다며, 이 영화는 ‘말맛’보다는 연이어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통해 재미를 선사한다.
감독의 남편이자 이 영화 속 아들 역을 맡은 윤원준이 나선희 감독에게 건넨 단편 시나리오를 읽고 장편영화로 발전시켰는데, 배우들이 미국 유학 경험이 있거나 거주 경험이 있어서 더욱 현실적인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딸 윤희 역을 맡은 이주우가 지난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극 중 아빠로 나온 김종구가 “그게 아니고”라고 대사를 할 때 실제로 답답했다고 말한 것만 봐도 리얼리티가 잘 살아있다는 걸 증명한다.
극 중에서 준배가 사위한테 가족과 식구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으며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데, 이에 대해 나 감독한테 둘의 차이를 물으니, 이 대사는 본인의 아빠가 남편한테 했던 말에서 따 왔는데 아직도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사랑하면 식구가 가족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대한 미국에 동화되어 살아가려는 자식 세대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부모세대의 갈등을 그린 영화 <라리랑>은 29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