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고 들리는 소리

마샤 실린스키 감독의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은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기억의 재현 방식을 탐구한다.
1910년대부터 2010년대에 걸쳐 독일의 한 오래된 저택에서 살았던 네 명의 여성, 알마, 에리카, 앙겔리카, 그리고 렌카의 이야기는 비선형적 편집과 섬세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세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여성 서사로 직조된다.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위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립, 불안, 침묵이라는 공통적인 상처의 무게이다.
보통 ‘집’이라는 공간은 풍요로움이나 안락함과 같은 의미로 상징된다.
그러나 영화 속 집은 안락한 공간이 아닌, 여성들에게 부여된 억압과 고립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기능한다.
카메라가 좁은 4:3 화면비를 통해 인물들을 가둘 때, 관객은 이들이 겪는 세 가지 심리적 감금 상태를 체감하게 된다.
초기 시대의 알마(1910년대)부터 현대의 렌카까지, 여성들은 사회적 기대와 억압 속에서 강요된 고립을 경험한다.
가부장적 질서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내면화된 정숙함은 곧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안락해야 할 집이 물리적 공간을 넘어 외부와 소통이 끊어진 심리적 감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립된 공간은 곧 불안의 증폭 장소가 된다.
에리카(1940년대)의 이야기는 전쟁의 광기가 가정으로 스며들면서 발생한 폭력과 불안을 보여준다.
이 불안은 눈에 보이는 위협뿐만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에서 암묵적으로 팽배한 예측 불가능한 긴장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런 감정들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전이된다.
이 영화의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침묵’이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억압되어 발화되지 못한 채 집안의 벽과 마룻바닥에 묻혀버렸다.
감독은 대화 대신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이 침묵의 무게를 전달한다.
마룻바닥의 삐걱거림, 숨 막히는 숨소리, 멀리서 들리는 미세한 울음 소리 등은 억압에 짓눌린 채 무너져 내리는 여성의 내면이 세대를 거쳐 반복적으로 내는 비명, 즉 침묵 속에 갇힌 언어를 상징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은 이 침묵을 깨는 순간, 여성들의 고통이 비로소 애도와 치유의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
영화 자체는 시간의 흐름이나 인물 순으로 진행되지 않는 불친절한 구성을 취한다. 비슷한 사건이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시간의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친절한 설명도 없다.
하지만, 화면과 소리가 전달하는 힘은 강력하다.
좁은 4:3 화면비가 시각적인 압박감을 더하고,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주인공의 심리를 전달하는 완벽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을 감싸는 침묵을 넘어선 미세한 소리들은 심리적 파장을 증폭시키며, 집을 단순히 거주지가 아닌 기억과 트라우마가 축적된 장소로 격상시킨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요했던 고립, 불안, 침묵이라는 세 가지 족쇄를 직시하도록 이끈다.
비록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2010년대에나 존재했던 트라우마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면서, 그 침묵 속에서 벗어나 진실을 발화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은 오는 17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