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택시에서 마주한 내 인생의 민낯

뉴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뒤로하고 JFK 공항을 떠나 도심으로 향하는 노란 택시 한 대. 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우리는 가끔 예기치 못한 인생의 진실과 마주하곤 한다.
다코타 존슨과 숀 펜 주연의 영화 <대디오>는 목적지까지 향하는 90분 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자기 자신을 강제로 대면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대화극이다.
택시는 다소 이색적인 공간이다. 때로는 목적지까지 침묵을 지키고 싶은 ‘이동 수단’이지만, 때로는 백미러 너머 기사가 건네는 투박한 한마디에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고해성사소‘가 되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세련된 커리어우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유부남과 위태로운 관계에 함몰되어 있다.
베테랑 기사 클라크는 그녀의 불안한 눈빛과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 진동 소리만으로 그녀가 처한 늪을 정확히 짚어낸다.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주는 자극을 즐기는 거야”라는 클라크의 독설은 승객으로선 당장이라도 차 문을 열고 내리고 싶을 만큼 날카롭고 무례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이 그녀의 정지된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인 <대디오>는 주인공이 불륜 상대를 부르는 애칭인 동시에,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거대한 정서적 결핍을 상징한다.
그녀가 자신을 도구처럼 대하는 관계에 집착했던 이유는 사랑이 깊어서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 가장 필요했던 존재인 ‘아버지’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했던 인정과 보호의 부재, 즉 애정의 허기를 엉뚱한 곳에서 채우려는 부분도 있다.
이러한 설정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와 정서적 유대를 충분히 맺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이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 지금 매달리고 있는 그 관계가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과거의 결핍이 만들어낸 가짜 안식처인지 말이다.
영화는 택시 기사가 흔히 묻는 “어떤 경로로 갈까요?”라는 질문을 통해 인생의 본질적인 선택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그동안 자신의 결핍을 핑계 삼아 ‘어쩔 수 없는 관계’ 속에 자신을 방치해 왔다.
하지만 클라크는 냉정하게 지적한다. 과거의 상처는 당신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그 상처를 안고 어떤 길로 주행할지는 오로지 현재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환경이나 운명을 탓하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곤 한다. 목적지까지 막힌 길을 돌아갈지, 아니면 지금 길을 계속 갈 것인지.
통행료를 내더라도 유료 도로를 이용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승객인 자신이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한 뒤에도 비극적인 관계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문을 열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지는 더 이상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용기’에 달린 문제다.
영화 <대디오>에는 화려한 액션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하지만 단 두 배우, 다코타 존스와 숀 펜이 주고받는 대화만으로도 긴장감을 선사한다.
“내 인생은 잘 굴러가고 있다”라며 자신을 위안하던 주인공이 택시에서 내릴 때의 표정은 이전과 분명 다르다.
익명의 타인이 건넨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비로소 진짜 자신을 응시하게 된 그녀는 이제 인생의 경로를 재탐색할 준비를 마친 듯 보인다.
이 영화는 관계에 지친 이들, 혹은 환경을 탓하며 선택을 회피해 온 이들에게 좁은 택시 안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연기 대결 그 이상의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
영화 <대디오>는 오는 28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