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다

우리는 냉소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뀌어” 직장에서, 일상에서, 혹은 거대한 사회적 문제 앞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무력감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쩌면 ‘불가능 주의자’가 되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이윤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가능주의자>는 바로 그 냉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뜨거운 이야기다.
영화는 한국 동물권 운동과 비거니즘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여성 활동가들의 13년 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건 페미니즘’이라는 명확한 색채를 띠고 있지만, 스크린이 열리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가 가진 본질은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성장과 연대’에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신념을 가지게 된 계기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다. 신나게 관람했던 수족관 돌고래 쇼의 이면을 깨달았을 때의 부끄러움, 혹은 매일 지나치던 길가에서 문득 마주친 동물의 눈빛처럼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이다.
그 사소한 호기심과 다정함을 외면하지 않았던 미약한 발걸음들이 모여, 10년이 흐른 지금 ‘개 식용 종식법 통과’나 ‘수족관 돌고래 방류’라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결실을 보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 보면 바위는 깨지지 않아도 흔적은 남는다고 했던가? 이들은 끈질긴 실천으로 끝내 그 단단한 바위에 금을 내고야 말았다.
물론 영화는 마냥 아름다운 승리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매일 고통의 현장을 마주하며 자신을 하얗게 불태우다 끝내 소진(burnout)되어 활동을 내려놓는 이들도 있다.
그 쓸쓸한 퇴장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남는다. 처한 상황만 다를 뿐, 우리 역시 각자의 일터와 삶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다 지쳐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치열하게 버텨낸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쉼표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바통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Cando-ist’이다. 막연하게 다 잘될 거라고 믿는 낙관주의자(Optimist)와 달리, 가능주의자는 가능성이 1%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기꺼이 사다리를 가져와 그 가능성을 높이려는 실천가를 뜻한다.
영화 <가능주의자>는 우리에게 대단한 혁명가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내가 내딛는 아주 작은 한 발자국(텀블러를 챙기거나, 누군가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일상의 나지막한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등이 절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하며 지쳐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극장을 나설 때쯤엔, 식어버린 마음 한구석에 다시금 사소한 ‘가능성’의 불씨가 지펴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 한, 작은 실천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세상은 냉소하는 똑똑한 이들이 아니라, 미련해 보일지라도 한 발짝을 내딛는 가능주의자들에 의해 조금씩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가능주의자>는 오는 15일 개봉한다.
/마이스타 박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