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말 한마디에 천재 화가가 되는 현실
유명한 화가 밑에서 조수로 일하는 사와다는 본인도 화가이지만, 기계처럼 그림을 찍어내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로 오른팔을 다치자, 쓸모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곧바로 해고된다.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자기 그림을 대신 그리라고 시켜놓고 팔을 다쳤다고 해고라니 억울하다.
집에 돌아온 그의 눈에 도화지 위에 개미가 기어가는 게 보인다. 진짜 기분도 뭣 같은데, 개미를 가두기라도 하려는 듯이 개미 주위에 원을 그린다.
하지만 원을 그렸다고 개미가 못 지나가지 않을 터. 개미가 원 밖으로 나가면 또 원을 그리고, 또 원을 그리고 반복한다.
다음 날, ‘작품’이라며 동그라미만 잔뜩 그린 그림을 한 가게 주인에게 보여주고, 우연히 사와다의 동그라미를 본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와 ‘원상(圓床)’을 그려주면 장당 100만 엔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갑자기 인터넷 상에서 사와다의 원상이 화제가 되고,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원상을 찍어내듯 그리지만, 원 안에 욕심이 있다는 이유로 작품을 팔지 못한다.
영화 <동그라미>는 예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과연 유명한 화가가 조수를 여럿 기용해 여기에다 이런 모양과 색깔로 그리라고 지시하고, 검토 후에 서명만 하면 과연 이걸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천재 작가’이니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의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동그라미 하나로 사와다가 스타 작가가 되자, 너도 나도 ‘그깟’ 동그라미 그리는 게 뭐 그리 어렵냐며 자기가 그린 동그라미를 사와다의 작품이라고 인터넷에 올린다.
하지만, 어떻게 아는 건지 ‘가짜 사와다’의 작품들은 하나도 안 팔린다.
유명세를 타자 사와다는 동그라미 말고 다른 그림도 그려본다. 그러나 갤러리 측에서 넌 동그라미로 유명한 작가이니 그냥 동그라미나 그리라며, 이 그림에 동그라미를 추가하면 그나마 작품의 확장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고 말한다.
이제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도 못 그리나 싶어 그림 위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정중앙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그림에 큰 구멍이 생기자 갤러리 측은 이것도 마치 작품인 양 전시를 감행하고,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사실 순수예술의 세계는 일반 비전공자가 잘 모르는 영역이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언론을 통해 한마디 하거나, 유명 화랑이나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잘 하면 갑자기 ‘천재 작가’가 되기도 한다.
전 세계에 성악가가 5명, 10명도 아닌데 왜 도밍고나 조수미보다 잘하는 성악가가 단 1명도 없을까?
물론 도밍고나 조수미가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성악가일 수는 있으나, 실제로 그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명의 성악가가 아직 알려질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어느 신문에 음대 교수나 평론가가 “조수미를 뛰어넘는 신인이 나타났다”고 한마디 해주면 아마도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 성악가의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부분 음악의 문외한이니, 유명 대학의 음대 교수가 그렇다는데 거기에 토를 달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알다시피 고흐나 피카소도 당대엔 지금만큼 인정받는 화가가 아니었다. 후대에 소위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고흐의 작품 세계가 어떻고, 피카소의 업적이 어쩌고 하면서 추켜 세우니, 이제는 그들의 작품을 살 수 있는 재력을 지닌 사람이 확 줄었다.
사실 고흐는 월세 낼 돈도 없어서 집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자기 그림으로 대신하기도 했던 작가인데, 이젠 그의 작품을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렇듯 천재 성악가, 천재 화가 등은 언론과 소위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심지어 망작조차 명작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게 바로 그들이다.
영화 <동그라미>는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내달 1일 개봉.
/마이스타 이경헌 기자